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디에고 토레스 로그백업 2부 (스압주의)

오덕후

by pak. 2024. 7. 8. 01:40

본문

Take Five 1&2부

2023. 12. 25~2024. 1. 29

 

 

로그잇기 바양갱

 

듀크 시티의 성실한 청년 1

 

듀크 시티의 성실한 청년 2 

더보기


고백할 것이 두 가지 있다. 고백보다는 고발에 가까울지 모른다.

우리 마을엔 누구나 인정하는 성실한 청년이 있다. 이름은 하비에르 토레스라고 한다. 싹싹하고, 성실하고, 잘생긴 외모에 키도 큰 젊은 청년. 일하는 요령도 좋고 가족에게도 헌신적이다. 누구나 하비에르를 칭송하고 높이 사지만, 사실은 다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내가 첫 번째로 고백할 사실은, 하비에르는 전혀 모범적이지 않다는 거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마을에서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나는 그와 평생 동안 살아왔던 하비에르의 친동생이니까 믿어도 좋다.

1

내가 기억도 못 하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사진과 영상 데이터, 하비에르의 머릿속에는 부모님이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는 종종 그들의 자취를 다시 밟으며 안도한다. 만약 하늘에서 하비에르와 내가 둘이서만 뚝 떨어졌다고 한다면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낳아 주신 어머니와 길러 주신 아버지가 있고 그들이 모두 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상기하면 상기할수록 퍽 행복하다. 젠장, 사실 구라다. 난 하비에르가 키웠다. 일곱 살 때 죽은 아버지가 날 길러 줬다고 하기엔 민망하지.

어릴 땐 부모님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하비에르에게 부모님 이야기를 해 달라고 닦달했던 기억이 난다. 나보다 4년치의 부모님을 더 겪은 하비에르는 부모님의 좋았던 점을 주절주절 읊어 주었다. 그 과정은 마치 압착기에 라임을 눌러넣고 꾹 짜내는 것 같았다. 어린 내가 행복한 가정을 상상하기 편하도록, 삼키기 쉬운 과즙만 짜서 컵에 담아 주는 것이다. 상큼하고 투명한 ’부모님 엑기스‘를 꼴딱꼴딱 마시면서 나는 여러 희망을 가졌다. 그 중 하나는 아버지, 어머니가 둘 다 상당한 장신이었다는 사실이다. 그건 옛 사진만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우리 집 문틀에 정수리가 닿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보다 머리 하나 정도가 작았다.

하비에르도 나도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키가 한 뼘은 컸다. 하비에르는 매년 5센티미터 넘게 크다가 열여덟 살 생일 이후로는 더 이상 위로 자라지 않았는데, 나는 그걸 일종의 목표로 삼았다. 그때는 너무 당연하게 나도 그만큼 크거나 그보다 클 거라고 굳게 믿었다. 사람들은 우유와 멸치를 자주 먹고 운동을 해야 키가 큰다고 했다. 뼈를 구성하는 칼슘이 많이 들어 있다면서.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주변 성당에서 시작한 사업이 있다. 미성년자가 굶지 않도록 매일 집집마다 아이들 수에 맞춰 병우유를 배달해 주는 일이다. 한 번도 그 우유를 남겨 본 적이 없다. 하비에르는 내가 우유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지 항상 나에게 우유를 양보해 주었다. 유리병 바닥에 하얀색이 비치지 않을 때까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마셨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면 168센티미터, 남들에겐 안 보이게 뒤꿈치를 약간 들면 그제서야 겨우 170센티미터. 내 고도는 거기에서 멈췄다. 하비에르는 정수리가 문틀에 닿았다. 나는 갖은 개짓거리를 다 해 봐도 스쳐 볼 수도 없었다. 키가 크는 대신 나는 초경을 했다. 날이 갈수록 예상치도 못한 곳에 지방질이 붙었다. 무언가 들킬까 노심초사하며 걸친 두껍고 큰 옷도 몸에 낙인처럼 박힌 곡선을 가리지 못했다. 자랄수록 하비에르가 물려 주는 옷이 더는 맞지 않았다. 바지는 밑단이 바닥에 질질 끌렸고 골반이 아예 들어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착해빠진 하비에르는 내가 자기 옷이나 신발을 가져다 입어도 별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오기가 생겨서, 한 번은 하비에르가 복싱 훈련하러 가는 날인 걸 알면서도 운동화를 뺏어 신은 적이 있다. 나는 형의 신발에 발을 넣으면 남는 앞공간만큼의 공허를 느꼈다. 거기에 휴지를 쑤셔넣어 억지로 신고 다녔지만 발이 아파 그만두었다.

그날 하비에르는 다른 신발을 신고 훈련에 갔다. 자기 열다섯 살 때 신던, 닳아빠진 데다 일 센티미터는 작아졌을 그 파란색 운동화. 집에 돌아온 하비에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은 까진 뒤꿈치에 반창고를 바른 다음 부엌에 서서 저녁밥을 만들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무어라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꽉 쥔 주먹에 땀이 뱄다. 하비에르에게 미안해서가 아니었다. 하비에르 몫의 우유를 아무리 빼앗아 마신다고 해도 내가 정말로 가지고 싶었던 것은 훔쳐 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하비에르를 죽이고 싶었다. 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2

부모님은 어릴 적 내 이름을 줄여 ‘티나’라고 하거나, 좀 더 친숙하게 ‘티니타’라고 불렀다고 한다. 부모님이 하비에르에게 ‘부모’ 역할을 물려준 후로 줄곧 하비에르도 날 티나라고 불렀다. 난 열네 살이나 열다섯 살 때까지 하비에르를 마니토*라고 불렀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형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 뒤로는 그냥 이름을 그대로 불렀다. 그러자 하비에르는 마치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인정해 주듯 그때부터 나를 마르티나라고 불렀다. 인정! 누군가에게는 명예롭고 기분좋을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비참한 일이다.

*마니토: 남자 형제를 뜻하는 단어 에르마노(Hermano)의 뒷글자 mano에 애칭 만드는 어미 ’-ito’를 붙인 매우 친근한 표현

우리 동네는 범죄 조직이 팽배해 있는 곳이니 제대로 된 법률이 없었다. 유일하게 도덕을 기대할 만한 곳은 성당이었는데, 나이 많고 인자하던 신부 하나가 죽고 나선 새 신부가 와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갱들에게 뒷돈을 받았다. (우유 배달이 끊긴 것도 대략 그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미성년자가 술을 사는 걸 막는 규칙도 딱히 없었다. 하비에르는 16살 때부터 술을 마셨다. 그땐 그렇게 심각한 일도 아니었다. 셔츠를 입다가 첫 단추를 잘못 꿰면 그 다음 단추도 몽땅 풀어야 하는 것처럼, 시간이 갈수록 하비에르는 고장이 났다.

스무 살이 된 형은 ‘술독에 빠졌다’는 말의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매일같이 술을 부었다. 낮에 카센터 일을 하고, 내게 저녁을 차려 주고 나면, 하비에르의 질 낮은 친구들이 집에 들이닥쳐서 그를 데리고 갔다. 한밤중이 되면 그 중 몇 명만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와서 마셨다. 형은 알콜 중독이라기보다 인간 중독이었으므로 아무나 사귀었고 아무나 만났고 아무나와 점막을 비볐다. 성별, 나이, 정말이지 무엇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들이 집에서 나갈 때까지 이어폰 볼륨을 최대로 높인 채 방에 고립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휴대폰 배터리가 다 닳아 더 이상 음악을 들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이불 속에서 귀를 막은 채 잠을 청했다. 방문 너머에서 무언가 삐걱이는 소리와 앓는 음성이 들렸다. 도무지 잠들 수 없어 몸을 뒤척이는데 문틈 사이로 무언가 액체가 흘러들어오는 환영이 보였다. 직감으로 알 수 있다. 하비에르가 몇 년 동안 내게 양보한 병우유다. 그렇게나 마셔 댔으니 모를 수 없다. 비 오는 날 물이 새듯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나는 짐승 젖이 밀려온다. 바싹 말라 삐걱이는 방바닥을 하얗게 메운다. 수면이 높아진다. 출렁이며 우유가 가득 차서 더는 발 딛을 곳이 없다. 방 모서리에 몸을 숨기고 있으면 나는 천천히 잠긴다. 이제 우유의 높이는 내 키를 웃돈다. 더는 숨도 쉴 수 없고, 저항할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곤 오직 미지근한 우유를 마시는 일뿐이다. 식도와 기도가 모두 하얗게 잠기고 폐가 창백하게 채워지고 나면 잠에서 깬다.

멍한 머리를 부여잡은 채 거실로 나가 본다. 하비에르는 나신에 트레이닝 바지를 대강 걸치고 아침을 만들고 있다.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 도망치듯 집을 나선다. 갈 곳이 없어 다시 돌아온다. 내 앞에는 식은 달걀 볶음과 베이크드 빈즈 약간이 있다. 맞은편에 앉아 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던 하비에르가 나를 보며 머쓱하게 웃는다.

정말이지 할 수만 있다면 형을 죽이고 싶었다고 단언한다. 살다 보면 흔히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있는 법이다.

3

스물한 살이 된 하비에르는 일을 손에서 놔 버렸다. 일종의 패배 선언이었다. 비로소 나는 형이 품고 있던 가장 큰 부담을 짊어졌다. 다시 말하자면, 형에게서 내가 빼앗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원치 않던 것을 가져온 거다.

스물두 살이 된 하비에르는 낮에 종종 복통을 호소하며 바닥을 구르거나 알 수 없는 액체를 토하곤 했다. 단순히 숙취나 소화 불량이라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병원에서 한 말은 달랐다. “정밀 검사를 받아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전용 기기가 있는 더 큰 병원에 가 보세요.” 우리는 각각 다른 ‘더 큰 병원’을 세 군데 돌았다.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어서였다. 놀랍게도 간암이었고 더 놀랍게도 유전이었다. 의사는 너무 늦기 전에 간을 절반쯤 잘라내고 조건이 맞는 새 간을 이식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남은 인생 동안은 겨우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살 수 있다고, 급한 수술이 끝나고 나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병행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남은 인생은 없는 거였다. 적막이 감돌았다.

나는 하비에르를 곁눈질로 봤다. 이상할 정도로 차분해 보였다. 상담이 끝난 뒤 며칠 동안 형을 끌고 다양한 센터와 시설을 빙빙 돌며 서류를 일곱 가지 넘게 떼었다.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이식받을 수 있는 간이 없다. 나의 키 큰 어머니가 바로 이 병원에서 형과 동일한 병명으로 죽었다. 이 기질은 모계로 쉽게 물려줄 수 있다. 난 A+ 혈액형이고, 하비에르는 O+ 혈액형이다. 나는 내가 형에게서 가져온 것들을 절대로 돌려줄 수 없다. 내가 매일 마셨던 두 번째 병에 담긴 우유를 이제서야 뱉어낼 수 없는 것처럼, 내 간은 아무리 잘게 잘라도 하비에르에게 줄 수 없었다.

스물세 살이 된 하비에르는 이제 집에서 살 수 없었다. 달마다 입원비를 내야 했다. 카센터 일 말고도 새벽에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와 주말에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를 각각 얻어 일했다. 보험은 우리 편이 아니었으므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우선은 대출이 필요했다. 미성년자인 나 대신 형 명의로 돈을 끌어다 쓰기 위해 열 명쯤 되는 은행원과 상담을 했는데,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돈을 빌려준 곳은 금융권이 조금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만 말해 둔다.

대략 일 년의 시간 동안 형과 나는 주기적으로 의사 얼굴을 보러 갔다. 진료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간 모형이 눈에 띈다. 매끄러운 분홍빛 플라스틱 재질로 표면에 회색빛 먼지가 달라붙어 있다. 돌연 핏줄이 일그러져 웃는 것처럼 보인다. 피로에 미치기 직전인 나는 일어서 가짜 간을 붙잡고는 던지려 한다. 간호사가 나를 붙잡는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체구가 절반으로 줄어든 하비에르가 나를 붙잡으며 고개를 숙여 용서를 빈다. 고개를 내려 형의 팔뚝을 본다. 뼈다귀 위에 최소한의 근육과 가죽만 얹은 것 같다. 내 안에서 무언가 터졌다. 피와 고름이 빠르게 썩어들어간다. 미묘한 악취가 느껴졌다.

누구나 태어난 이래 죽어 가지만, 암병동의 환자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죽어 갔다. 면도하다 긁힌 상처가 눈에 띄어서 소독약을 문질러 주면 하비에르는 혀를 내밀어 희미한 양의 알코올을 핥으려 했다. “하비에르, 네 오토바이 팔 거야. 우선은 일곱 대 중에 한 대만. 가져다 팔아도 제일 덜 아쉬운 게 뭐지?” 내가 어렵사리 꺼낸 말을 들은 하비에르는 혀끝의 씁쓸한 맛에 입술을 다시며 고개를 기울인다. “다시 탈 일도 없는데, 뭘 고른다고….” 울화가 치밀 법도 하건만 참았다. 여기서 화를 냈다가는 그대로 형을 죽일 것 같았다.

병동에서 나오면서 중고차 센터에 들러 타고 온 오토바이를 팔았다. 새 부품도 많고 성능도 좋아 꽤 짭짤했다. 매번 갚아야 할 이자는 늘고 입원비도 상당해졌다. 두 번째, 세 번째 오토바이를 파는 사이에는 몇 개월의 텀이 있었지만 나머지 네 대는 모두 한 번에 팔았다. 차고가 빈 후로는 매번 병동에 들를 때마다 왕복 네 시간 정도를 걸어야 했다. 어딘가 저릿하게 아파왔으나 그게 후들거리는 두 다리는 아니었다. 그런 일 년을 보내는 동안 형은 점점 말라 갔다. 조건이 맞는 간 기증자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의사와 나는 하비에르의 간을 떼어낼 준비를 하는 대신 모르핀 투여 용량을 늘렸다. 하늘이 파랗고 날씨가 환상적이었던 어느 날,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병동에 가 의례적으로 하비에르의 관 같은 병상 옆에 앉아 있었다. 하비에르가 나를 보고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그토록 오래 본 민망해하는 얼굴. 형은 오토바이를 판 돈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비에르 토레스가 반투명한 링거줄을 손끝으로 가지고 놀듯 만지다가 말한다.

”신시티로 가, 마르티나.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

하비에르는 그날 링거줄을 제 손으로 뽑았다. 그리고 다시는 술을 마시지도 집에 돌아오지도 않았다.

두 번째로 고백할 것은 내가 듀크 시티의 성실한 청년을 죽였다는 사실이다. 종종 형을 죽인 죄로 감옥에 가는 상상을 했다. 누구도 내게 그런 형벌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하비에르는 내게 추방형을 선고했다. 언젠가 성당에서 온 신부와 수녀가 최초의 살인자에 대해 말해준 기억이 난다. 형제를 죽인 죄로 영원히 발붙일 곳 없이 세상을 떠돌게 된 남자 이야기. 삭은 타이어가 붉은 황무지 위를 구를 때, 나는 내가 평생 이방인 신세로 남을 거라 짐작했다.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정상영업합니다 (납치 v-log)

 

역극

 

 

Legal Alien

 

 

엔딩로그

듀크 시티의 성실한 청년 3

 

 

 

엔딩로그 외전 세컷극장: 패션왕

 

운영후기

엔피씨들

 

'오덕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예남vlog #2 (스압주의)  (0) 2024.07.08
노예남vlog #1 (스압주의)  (0) 2024.07.08
디에고 토레스 로그백업 1부 (스압)  (0) 2024.07.08
위대한 유산/Legal Alien  (0) 2024.04.29
바니바니바니바니당근당근  (0) 2023.12.26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