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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과 흠

오덕후/글연성

by pak. 2021. 4. 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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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은 종종 호세의 드러낸 팔뚝 위 흉터들을 매만지곤 했다.

호세는 그것이 굉장히 유쾌한 대화 주제인 것처럼 잘 떠벌릴 자신이 있었다. 잘 벼른 무쇠로 얕게 베고, 달구어진 인두며 담뱃불에 지지고, 뭉개고 짓누르고 후벼서 갖가지 방법으로 아프게 한 흔적들.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두 놀란 숨을 들이쉬기 마련인 우둘투둘 못생긴 얼룩들. 호세는 그것들의 일부만 기억했다. 날붙이가 지나간 자리는 빨리 잊으려고 했다. 그런 종류는 보통 피 보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무엇을 끊거나 아주 깊게 베거나 하지는 않았다.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지면 그때부터 비로소 기억 속에 남겨주곤 했다. 예외로 화상은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직접 겪기 전에는 타는 고통이 가슴속에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그러진 표피 조직을 보고 있자면 가슴 속이 답답해지기까지 했다.

매일 아침 샤워하며 타올이 스쳐갈 때 잠깐 더듬어 보는 일 외에는 흉터를 남에게 보여줄 일도 구태여 '소개'할 일도 없었다. 호세는 내심 케인이 물어봐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무색하게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빙빙 얽힌 핏줄과 지방과 근육들을 감싸서 지키기에는 너무 물렀던 얇은 피부 한 장을, 케인은 스윽 스윽 결끼리 부딪쳐서 소리가 날 때까지 문질렀다. 오묘한 손길이 닿으면 호세는 생각했다. 이걸 네가 다 가져가 버리는 것 같아. 손끝으로 꾸욱 누르면 이 흔적이 다 피부 아래로 가라앉을 것 같아. 그러면 모두 어디로 갈까. 무른 부분을 파고들어 갈까. 희고 단단한 뼈 위에 침전하여 새겨지진 않을까. 호세는 장난기 섞인 웃음을 흘리며 둥근 머리통을 밀어냈다. 이제 그만해. 닳겠다. 언제까지나 유희였기 때문에 즐거운 일이었다. 아문 상처에는 소금을 뿌려도 그뿐이다.

뒷골목의 수많은 병든 목숨들을 기억한다. 폐에 물을 채워서 그 가냘픈 벽면에 다닥다닥 병마를 키우는 뒷집 노인, 천식에 걸린 조카딸의 짜증 섞인 아우성까지. 그러나 어떤 기침도 그의 이름만큼 가슴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다. 케인. 케인. 두어 번 호명해 보았다. 갈비뼈가 너무 작아. 숨통이 막혀. 점점 옭아매 오고 있어. 폐가 부풀고 있어. 매번 그래, 케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매번 그렇게 돼. 그게 좋아서 계속 불러. 염증 같아. 너는 병증이야. 너도 나와 같다면, 한숨과도 같은 내 이름을 어서 내쉬어 봐. 정적이 흐르고 나면 다시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지 몰라. 어서, 호세, 하고…….

내가 너였다면 신선한 공기를 한껏 머금을 때마다 다시 내 이름을 부를 수 있음에 기뻤을 텐데.

호세는 그게 영영 이루어질 일 없는 소망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겉이 딱딱해진 채로 식은 빵조각을 결 따라 찢고 아삭아삭 씁쓸한 셀러리를 포크로 집어 입안에 우겨넣으며 그가 삼킨 수많은 살들을 생각한다. 너를 기억하는 건 내 입과 목구멍 뿐이야. 보고 싶을 때면 이름을 불러. 혀가 윗니에 닿았다가 슬며시 내려가면 케인, 하고 바늘로 쿡쿡 찌르는 아픈 소리가 나. 유리 가루를 한 스푼 떠서 삼켜 볼까. 비슷하게 아플 텐데. 그걸 식도가 난도질당하고 곧 내 핏물에 숨이 막혀서 죽을 때까지 몸속에 가지고 있을 거야. 비로소 네가 내게 준 고통과 상응하는 정도의 흉터가 남겠지. 그거라면 영원히 가지고 있을 수 있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네 시체나 부르면 연기처럼 날아가 버리는 이름과는 다르게. 가슴 속에 빛을 담고 사는 거야.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네 눈을 닮은 푸른 조각들….

지옥으로 돌아와. 케인 헌츠맨.
나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호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마냥 웃었다.

평생 하지도 않을 일을 그리면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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