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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후/글연성

by pak. 2021. 6. 1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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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봄에 입사했던 것 같은데, 생각하며 호세 로메로는 창밖을 보았다. 잘 닦인 길 위 가로수가 파릇파릇 녹색으로 우거져 있었다. 창문에 손을 대면 약간 뜨뜻했다. 초여름인가 아니면 한여름인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달력을 보고서야 알았다. 제이, 유, 엔, 이, 네 글자가 인쇄되어 있다. 아직 유월이었다. 안도했다. 아직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뜨뜻한 유리 위에 가만히 손을 올리고 바깥은 더울까, 햇빛이 좋은데, 그런 실없는 혼잣말을 하고…….

서른일곱 번의 여름을 생각한다. 사무실은 지옥이었다. 큰돈을 모아 자그마한 선풍기를 장만하려 했지만 예산안은 누나의 탄창을 채우는 데까지만 해도 이미 너무 빠듯했기 때문에 기껏 모은 돈을 울며 장부에 적어넣어야 했다. 여름의 칠할은 비가 왔다. 곰팡이 핀 벽지는 숨을 죄여 온다. 폐에 유독가스를 꽉꽉 눌러담는 기분이었다. 컴퓨터의 발열을 어떻게 할 방도 또한 없었으므로 호세 로메로는 찜통 안에서 검정색 긴팔옷을 입고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키보드를 두드렸다. 매일 생각했다. 아, 이대로는 죽겠다고, 죽어버리면 되겠다고. 하지만 그 울긋불긋 네모진 방에서 그가 간신히 숨을 쉬든 말든 죽은 것은 뙤약볕 아래 먼지가 꽃처럼 핀 골목골목 뒤편에서 뜨거운 피를 뒤집어쓰고 일하던 누나와 매형이었다. 호세 로메로는 지옥에서 갓난애를 안고 걸어나왔다. 그 뒤로는 쌩쌩 칼바람이 불고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호세 로메로는 겨울 속에서 살았다. 그건 빙하기였다.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겨울이었다. 살갗이 얼어붙고 기관지가 갈갈이 찢기는 것 같아도 전기 난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도 호세 로메로는 그 속에서 살았다. 불쌍한 아이를 품에 데리고 있으면 온난하진 않아도 미지근하기는 했으니까. 하얗게 부서지는 입김이 서로를 데워줄 정도는 되었으니까.

이곳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아, 계절이 없는 것 같아, 호세 로메로는 기묘한 작동음과 함께 불어오는 냉기를 맞았다. 기숙사에는 천장마다 에어컨이 붙어 있었다. 버튼을 눌러 켤 필요도 없었다. 제가 알아서 일정온도를 유지하니까. 더우면 잠시 그 앞에 서 있으면 되고 추우면 얇은 옷을 덧입으면 된다. 이런 데서 살았으면 나도 성질머리 멀쩡했을걸, 헛소리를 하면서 호세 로메로는 가만히 천장을 쳐다보았다. 태양도 엘이디 조명이 대신하는 이곳에서 온기를 느끼려면 사람의 살갗을 찾는 수밖에 없어. 삼십육점 오 도의 온기만이라도 바랐던 거야. 적어도 사람으로 남았으면 했어. 원목으로 된 가구를 들여 볼까. 금속이라고는 넌더리가 나는데.

어쨌거나 애인을 껴안고 어깨에다 고개를 묻든지 따끈한 수프를 한 입 떠 먹든지 그런 짓들을 하면 대충 살아있다는 생각은 든다. 수은 온도계의 빨간색 눈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안심이었다. 그러니까 데일 만큼 뜨거워지지는 말아요. 아예 식어 버리지도 말고. 지옥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그리 좋지 않을 테니까. 극단에 서서 시소 놀이를 하는 건 이제 질렸어. 이 쾌적한 감옥을 나는 누려 보기로 했어. 위태로워도 살아 있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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