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 구름은 만져지지 않는다. 바람은 흘러갈 뿐 머물러 주지 않는다. 칼을 휘둘러도 안개를 벨 수 없고 그물을 쳐도 구름을 잡을 수 없다. 그러니 손을 뻗어도 그것들에게 닿을 수 없다며 역정을 내는 짓은 무익한 일이다. 그것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것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것들은 어디에도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이위신은 머물다 흘러가는 것을 선호했다. 보다 정확히, 그는 대체로 그런 성질을 지닌 인간이었다. 무엇에도 착 달라붙을 수 없었다. 어디에나 느슨하게 걸쳐져 있었다. 가장 쉬운 예시를 들자면 그는 단 한 번도 완전한 본토인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이방인이었던 적도 없었다. 이위신은 언제나 행주로 한 번 닦고 약간 남은 기름때처럼 찐득하게 붙어 있다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모두에게 찝찝한 이물감만 남기고 사라지길 반복하는 사람이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누구도 원해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위신도 그랬다. 이위신은 언젠가부터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였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안개병이 들어 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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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학원에서 잠시 일한 적 있다던 아버지는 공단에서 퇴근한 후 언제나 유년기 이위신에게 각종 읽을거리를 필사시켰다. 영어부터 익혔던 이위신이 근본부터 완전히 다른 언어를 배우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붓끝에 담아 글을 쓰는 작업이 효과적일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읽고 쓰고 또 읽고 쓰는 지루한 과정의 무수한 반복 끝에, 교복을 입은 이위신은 남들보다 아주 살짝 못 미치는 정도로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다.
그의 필체는 (이위신이 다니던 중학교 교사들 말마따나) 요즘 애들 답지 않게 멋들어진 모양새였다. 수학 시험을 보면 그 성적이나 아래에 적힌 숫자들보다도 맨 위에 적은 이름 석 자가 가장 돋보이는 아이였더랬다. 집에서 그런 것을 시키느냐, 손이 다 아프겠다며 재미있어하는 또래들 앞에서 이위신은 ”무릎이 더 아파, 바닥에 앉아서 써야 하거든.“ 하고 웃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넘기고는 했다. 이 특별한 재주로 연애편지를 대필하고 동의서 하단의 부모님 사인을 위조하기도 했던 재치있는 소년은 학급에 몇 없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종종 가볍게 업신여겨졌고 그보다는 낮은 빈도로 노골적인 차별을 받았다.
부친은 소년 이위신의 거대한 대들보였다. 이위신은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자신을 닮은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일부였고 미래의 자신이었다. 제 이름도 부친과 같이 오얏 리로 시작하는 한문 석 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제 체격도 부친과 비슷하게 점점 커져 갔다. 바깥에서는 부친의 언어와 넉살과 처세를 사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부친은 이위신이 생존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치고 언제나 적절한 보상과 벌을 주었다. 이위신은 부친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위신은 그 모든 가르침이 대체로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다고 여겼다. 십대 후반으로 자라며 어깨가 건장하게 벌어지고 난 후부터는 방문 앞에 비스듬이 세워져 있는 회초리가 손바닥이나 종아리에 상처를 낼까 무서워할 필요도 없었으므로, 부친의 가르침은 오직 긍정적이기만 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권위적으로 굴 때, 이위신은 고개를 숙이고 따랐다. 아버지가 약한 교통사고를 입고 일을 쉬느라 가세가 기울었을 때, 이위신은 그를 다독이며 빠르게 부업과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그에 비하면 이위신에게 어머니의 존재감은 조금 미묘했다. 어머니 또한 헌신적이고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이위신은 그녀에게 ‘물려받은 것’이 있다고 확언하지 못했다. 맨들맨들한 갈색의 살갗이나 피곤할 때 생기는 쌍꺼풀, 대부분의 상황에서 머릿속에 광둥어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악센트진 영어 문장 같은 것은 그 어린 소년의 성장 과정에서 따지고 보면 극복해야 할 결함이었지 소중한 유산은 아니었다.
어쨌든간에, 사랑받는 소년은 바깥에서 이리저리 부딪친대도 결국 누렇게 바랜 크림색 벽지가 깔린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면요리를 받아먹었다. 열여섯 살의 이위신은 언젠가 이 어여쁜 둥지를 떠나게 되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지친 채 돌아오면 아버지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격려해 줄 테고 어머니는 쇠고기 기름 방울이 둥둥 떠 있는 달짝지근한 국물을 마시게 해 줄 것이다. 그때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애틋하게 팔짱을 끼고 성당에 다녀올 것이고, 주말이면 이위신을 데리고 시시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러 갈 것이고, 좁고도 아름다운 애증의 식민 도시에서 항구와 산과 절벽을 보러 어디든 다닐 것이다. 그 믿음은 크림색 벽지와 거기 배인 향신료 냄새가 끔찍하게 느껴질 때쯤 반투명해졌고 자신을 배신한 부친이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을 때 완전히 투명해졌다.
고등학교에 온 후로 처음 사귄 여자 친구는 이위신의 교복 셔츠 가슴팍에 얼굴을 비비는 것을 좋아했다. 검고 곱슬거리는 단발이 턱을 스치고, 하얀 얼굴에 비해 뺨은 신호등처럼 붉고, 수줍게 큰 눈을 깜빡거리는 것이 아주 사랑스러운 여자애였다. 이위신은, 그 나이대 남자애답게, 당연하게도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만 차 있었다. 그날도 열일곱살 이위신은 해가 진 통라우 주택가에서 그애의 손을 잡고 껴안았다. 어린 연인들은 가로등만 켜진 골목길 한편에서 풋풋하고 시덥잖은 농담을 하며 짓궂게 웃었다. 분위기를 잘 잡아서 이것저것 시도하고 싶었지만, 모든 게 처음이라 얼어붙은 그 애의 조막만한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서 오늘은 이만 보내 주기로 했다. 다음, 아니면 다음의 다음, 그것도 아니면 그 다음 데이트 때쯤에는 조금 더 진도를 뺄 수 있을까, 이위신은 즐거운 계획을 꾸몄다.
그때 그 학교 아이들은 다 고만고만한 연립 주택에 살았다. 옆옆 건물에 사는 그 애 집 앞까지 함께 걷고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었다. 빨간 볼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서 땅에 발을 굴렀다. 소년은 열감이 가시지 않아 집에 오면서도 피식거렸다. 윤기 나는 짧고 검은 머리가 여자애의 장난에 어울려 주느라 다 헝클어져 있었다. 두 블럭 걸으니 익숙한 네모난 벽이 나왔고 그 다음에는 더 익숙한 고철 현관문이 나왔다. 열쇠를 찔러넣은 다음 돌려서 열고 나면 누렇게 바랜 크림색 벽지가 나왔다.
크림색 벽지. 분명 아는 색이다.
크림색 벽지가 낯설었다.
아니다. 벽지는 그대로였다. 집안 공기가 낯설었다. 이위신은 기우라고 생각하며 좁은 복도를 지나 거실로 갔다. 목이 타서 물을 한 잔 마시려는데 적막 속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이위신은 마른 물잔을 싱크대 근처에 내려놓고 거기로 갔다. 부모님의 침실이었다. 이위신은 잠기지 않아 살짝 틈이 나 있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낯선 여자가 있었다. 향수인지 헤어제품 냄새인지 알 수 없는 아주 낯선 향이 났다. 그게 전부였더라면 곧바로 집전화를 들어 경찰에 신고했을 테지만, 불운하게도 그곳에는 더없이 익숙한 사람이 함께 있었다. 익숙한 사람은 익숙한 음성과 익숙한 이름으로 평온하게 아들을 불렀다.
“아신. 오늘은 일하는 날 아닌가?”
이위신은 ”아닌데요,“하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원래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가 있는 요일인 것은 맞지만, 정육점 사장이 딸아이 결혼식에 간다면서 휴무일을 선포했고, 오늘은 어머니도 일하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으니 잔소리를 듣지도 않을 것이고, 그래서 여자 친구와 저녁 내내 시시덕거리다가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들어왔다는 사실도, 열일곱 살 이위신은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이위신은 얼어붙었다. 낯선 사람을 쳐다볼 수가 없어 익숙한 사람을 쳐다봤다. 익숙한 사람과도 눈을 마주칠 수가 없어 시선은 다시 낯선 사람에게로 갔다. 단추가 삐뚤어졌다. 스타킹이 덜 올라갔다. 급하게 옷을 주워입은 모양이었다.
침묵의 대치가 이어졌다. 놀라기만 한 게 아니었다. 이위신은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도저히 몰랐다. 아버지는 그런 걸 가르친 적이 없었다. 낯선 사람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아버지를 곁눈질했다. 뭐라도 하라고 재촉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까지의 교육에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가르침을 주었다.
”너만 조용히 있으면 돼.“
소년은 의지와 상관없이 정말로 입도 뻥긋 안 하고 조용히 있었다. 아버지는 그걸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잘 만든 가구에 마지막 못을 망치로 쳐 박아넣듯 덧붙였다.
”잘 생각해라.“
그날 밤 열일곱살 이위신은 그대로 집 현관문을 박차고 나와 여자친구네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상냥하신 조부모님과 살던 여자친구는 한참 뛰느라 땀에 푹 젖은 소년의 부탁을 듣고 문을 열어 주었다. 이위신은 도저히 사정을 조리 있게 설명할 수가 없어 연신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어떻게든 남의 집에 몸을 들이밀고 나서는 가방을 집에 두고 와서 바지 주머니에 든 건 덜렁 휴대폰 하나라는 사실을 떠올렸고, 그 다음에는 탁자에 두고 온 물잔을 떠올렸다. 아까는 입이 탔다. 이제는 속이 탔다. 여자친구가 겨우 건네준 생수를 입안에 쏟아넣는데, 액체가 지나는 경로에 따라 혓바닥과 식도, 위부터 시작해 모든 장기가 전부 썩어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애의 방 바닥 한켠에 급하게 신세지느라 깔고 자기에는 너무 얇은 이불을 깔고 누웠을 때도, 그애가 이리로 오라며 매트리스 위에 검지를 콕콕 찍을 때도, 아까는 그토록 부끄럼 많던 여자친구가 먼저 다가와 몸을 배배 꼴 때도, 이위신의 뱃속은 뒤집히고 있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바라던 도킹에 마침내 다다랐을 때, 이위신은 그 애를 밀어내며 불쌍한 소녀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그 애는 거부당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래서 불쌍한 소년은 그날 밤 이후로 다시는 그 애와 손을 잡지 못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투성이로 집에 찾아왔을 때조차도 언제나와 같은 똑같은 얼굴로 난처하게 웃고 있었기에, 그 애의 기억 속에 소년은 찝찝하고 괴상한 얼룩으로만 남았다.
다음날 어머니는 집에 돌아왔다. 낯선 사람은 흔적도 없었다. 아버지는 놀라울 정도로 평소와 똑같이 굴었다. 그 모습은 소년이 살아 왔던 지난 나날을 자동으로 상기시켰다. 이번 한 번이었을까? 상습범일까? 아버지는 내가 본 모든 순간 저렇게 똑같은 얼굴로 다정했으니 어쩌면 평생 저렇게 살았을지 모른다. 심경이 변화한 방향과는 정반대로, 우습게도 소년은 아버지에게 더 순종적으로 굴게 되었다. 일부러 말을 걸거나 농담을 붙여 아버지에게 아직 자신과의 관계가 건재함을, 자신의 대들보가 무너지지 않았음을 확인해 보기도 했다. 사실상 그건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서 자신 뒤에 단단한 벽이 있다고 생각하며 등을 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소년은 허공에 기대는 척하면서 휘청거리지 않는 법을 익혀 갔다. 그 연습을 하면 할수록 소년은 어머니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가정을 배신한 부친에 대한 거부감이 한 차례 굴절되어 어머니에게 닿은 것이다. 본론을 꺼내는 것을 피하다 보면 입 밖으로 나가는 모든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다른 모든 청소년들이 그렇듯, 이위신은 거짓말을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대화를 피하게 되자 몇 달 후부터는 어머니와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염증이 일고 불편해졌다. 어머니는 툭 튀어나와 자꾸만 신경쓰이고 걸리는 존재였다.
한번 여자 친구와의 잠자리를 거부했던 열일곱 살 이위신은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성이란 것을 완고히 거부하며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로 살 것인지 아니면 보통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연애와 섹스를 하며 살 것인지 정해야 했다. 선택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작용했는데, 첫째로 그는 아버지 때문에 인생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제한하고 싶지 않았다. 둘째로 그는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이었고 이제는 바깥일에 몰두하며 집안일을 잊고 싶었다. 그래서 후자를 선택했다. 보통 사람들보다는 조금 많이 탐닉했다. 아르바이트 날이 아니더라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아졌다. 아버지는 그것을 편하게 여겼고 어머니는 그것에 마음을 썼다. 동성에게조차 질투 섞인 성적 모욕을 들었던 날, 이위신은 자신이 영혼 속 아버지를 죽이며 살아가야 하는지 따위의 심란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같은 고민을 하는 다른 모든 소년들처럼 거기에 실패했다. 그에게 물려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위신은 침대에 누워 웅크렸다. 이위신의 가슴은 언제나처럼 비어 있어 심장이 따끔거리는 고통을 느낄 수는 없었다. 단지 무릎이 너무 아팠다. 붓글씨를 쓸 때 무릎을 꿇어서 그런 것인지 성장통 때문에 그랬는지 구분이 좀처럼 가지 않았다.
햇빛이 아스팔트를 쪼아먹을 것처럼 달구는 홍콩의 뜨거운 여름날, 어느 열여덟 살의 한때에 이위신은 참지 못하고 어머니 앞에 서서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되었다. 연이 끊어졌다는 친가 쪽 친척을 우연히 만나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아버지가 전처와의 재판에서 어느 정도의 위자료를 뱉어야만 했는지 들었기 때문이다. 왜소한 체격의 어머니 앞에서 그보다 더 작게 물 먹은 휴지처럼 쪼그라들어 있던 이위신은 몇 초 동안 죄인이 된 것만 같았다. 그리고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그녀의 간단하고 담담한 대답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져 넋나간 듯 물었다.
“알고 있었어요?”
이위신은 자기가 죄의식에 빠져 사느라 어머니를 피해자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의식했다. 그녀는 조금도 상처입지 않았다. 어머니가 빙긋 웃었다. 그 웃음이 공중에 흩어졌다. 그 흐릿한 웃음은 자신의 것을 닮았다. 그 웃음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물려준 평생을 가는 유산이다.
참으로 안개 같은 웃음이었다.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위신도 웃었다. 그리고 아픈 무릎을 뒤로 감췄다. 통증이 무색하게, 위신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리 큰 흉을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https://youtu.be/ntCsBxzECno?si=KRBF2NwS76FEFPkI
안개병에 걸린 남자가 있었다. 아버지가 공들여 지은 그의 이름은 위신이라고 했다. 고풍스러운 두 글자에는 그가 평생 소중히 여겨야 할 사명이 들어 있었다.
삼수이포의 공유 주택에 사는 정육점 매니저 라이언 리 웨이신은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규칙적으로 살았다. 웬만한 모든 일은 하고자 하면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는 그 흔한 미루는 취미 한 번 가진 적이 없었다. 평일 여섯 시에 기상하는 리웨이신은 남들보다 십 분 일찍 출근했다.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한 다음 잠에 들었다. 주말에는 애인에게 청판과 체자이민과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프렌치 토스트를 요리해 먹였다. 함께 성완을 산책하며 길가에 나온 개들을 보고는 집에 돌아와서 섹스를 했다. 이 주에 한 번은 애인이 궁금하다는 센트럴 근처 식당으로 외식하러 나갔고 한 달에 한 번은 유행하는 영화를 봤다. 아주 가끔 병원과 은행에 갔고 훨씬 더 가끔 부친의 유작을 꺼내 읽었다. 리웨이신은 남들처럼 노동하고 남들처럼 소비하고 남들처럼 사랑했다. 그 굴레에 단 한 번도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 굴레를 단 한 번도 탓한 적이 없었다. 그 굴레, 그 우리, 그 담장, 그 틀, 그 규칙이 없으면 그는 안개처럼 흩어지게 되니까. 풍선으로 안개를 가둬 둔 셈일까. 그렇게 표현하면 퍽 적절할 것이다. 라이언 리 웨이신은 그 굴레에 들어가고 싶어 발버둥쳤고 꼭 맞게 들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인간이 노동하기 위해 만든 가장 빼어난 발명품은 시간이다. 라이언 리 웨이신은 시곗바늘 소리가 좋았다. 23시 59분에서 00시 00분으로 넘어가는 순간이 좋았다. 그를 구성하는 숫자와 체계들이 좋았다. 마치 안개병에 걸린 자신의 느슨한 몸뚱이를 60개로, 24개로, 7개로, 30개 또는 31개로, 12개로, 365개로 딱 떨어지게 잘라 나누어 주는 것 같았다. 무형의 미묘한 존재감이 셀 수 있는 것으로 변환된다. 라이언 리 웨이신은 비로소 제대로 기능할 수 있었다. 흩어지지 않고 붙들려서. 날아가지 않고, 땅 어딘가에 매달린 채로. 그렇다. 매달린 채다. 혹자는 그가 죽은 사람hanged man 같다고 평했다. 턱없이 가느다란 줄에 종속되어 있고 그것을 끊을 수 있는데도 벗어나려 들지 않는 것이 가련하다고. 자신을 속이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느냐고. 너에게서는 팔딱이는 인간의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안개병에 걸린 적이 없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지.“
라이언 리 웨이신이 안개처럼 옅게 웃었다. 그것이 그들을 미치게 했다. 남들처럼 사는 남자는 남들처럼 보이고 싶어서 남들처럼 웃었고 언제나 어설픈 흉내는 거슬릴 수밖에 없다.
삼백육십오 개로 토막난 위신이 서른아홉 번 지나갈 동안 라이언 리 웨이신은 살던 대로 살았다. 가본 적 없는 대륙에 살게 되었고 이후에는 몇 차례씩이나 세계적 위기가 찾아왔다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걸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해 버렸다. 안개 낀 텅 빈 가슴은 무엇도 또렷하게 느낄 수 없지만서도 오래 굶으면 위가 쓰리고 추운 데서 통조림을 뒤지면 맨손이 얼어 동상을 입고 삔 발목은 오랫동안 뒤틀린 채 아물지 않아 아프다. 라이언 리 웨이신은 그런 시시콜콜한 통증에 아주 익숙했다. 더 이상 그것들에 호들갑 떨며 반응해줄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가 한 줌 재가 되어 유골함에 담기고 나서는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을 일도 없었고 일 년에 오륙 센티미터씩 위로 자랄 일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거진 스무 해가 지났다. 그 뒤로 무릎 뒤가 당기는 특유의 통증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이 자신이 기억하는 마지막 강렬한 고통이었기에 라이언 리 웨이신은 스스로 홍콩에서 온 사생아라 칭했다.